내 주변을 돌아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직장에서도 나 하나만 기독교인일 것이다. 기독교인이라 하면 별종 보듯 한다. 처음엔 나도 그들의 신앙 없음이 매우 어색했으나 차츰 신앙이 없이도 가능한 삶들을 두고 스스로 손해보는 느낌을 갖게 됐다. 어쨌거나 그때의 나는 오로지 '그들이 정상인가 내가 정상인가'하는 물음 뿐이었다. 지금부터는 한번쯤 정리했어야 했을, 내가 신앙을 정리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신학대학교를 나오고 IT 회사의 수석 개발자에 오르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이것이 모두 신앙 덕분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 기독교의 기본 정신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경이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서서히 신앙을 정리해야 했다.
내가 찾았던 성경의 오류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종교적 기억과 역사적 실체가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지금도 제도권 교회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성경이 쓰여진 연대 순서로보나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문맹이었던 것을 놓고 보자면, 이는 성경을 새롭게 열어보는 포인트가 된다. 신약성경 중 가장 초반에 쓰여진 것들은 복음서가 아니라, 바울서신이었다. 어떤 이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순으로 쓰여졌는 줄 알지만, 사실상 복음서 중엔 마가가 가장 먼저 쓰여졌다. 그리고 복음서에 앞서 바울 서신이 더 먼저 쓰여졌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바울은 한 혁명가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 예수라는 걸출한 혁명적 인물이 있었고, 그의 혁명은 실패했고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바울은 새로운 영적 인물을 예수에게 투영했다. 다시오실 그분으로 지정하고, 종말론을 설파했는데, 많은 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예수가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의 중요한 할례예식이나, 피를 불결히 여기는 풍습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예수의 살과 피'라는 성찬의식이 배풀어지고, 이후로 기독교를 지칭할 때 '살과 피를 먹는 종교'라는 오해를 낳게 되었는가를 따져보자면, 그 기원은 바울 때문이었다.
'살과 피에 대한 제의'는 본래 바울이 나고자란 동네 타소의 미트라교에서 기원하던 것이다. 그가 보고 배운 것을 교회의 중요한 성찬식에 접목시킨 인물인 셈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라 바울이란 인물이다. 그렇다면, 정작 예수의 제자들은 어찌되는가? 예수는 유대를 로마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였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다시 유대땅의 회복(독립)을 도우리라고 여긴 혁명가였다. 그와 함께 했던 세례 요한은 일찌기 목이 잘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당연히 그의 제자였던 예수가 역사에 등판한 것이었다.
예수가 죽고 그의 제자와 가족들은 예수를 기리는 예루살렘교회를 만들었다. 교회의 가장 권위있는 인물은 베드로가 아닌 예수의 형제 야고보였다. 복음서에 나오는 "누가 내 형제고 가족이냐" 하는 예수의 주장은 어쩌면 이런 예수의 가족과의 관계를 폄하하기 위한 복음서가 의도적으로 적시한 악의적 텍스트에 불과했다. 사실은 예수와 가족은 끈끈했고, 예수가 돌아다니는 여정마다 함께 했으며, 심지어 예수정신을 이어받아, 유대교의 한 종파가 되었다.
그렇지만 '예수'라는 존재는 바울이 생각하는 이방선교에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걸리는 것은 예수의 가족과 직계 제자들과 유대전통이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할례 받으라"는 이들을 신랄하게 저주한다. 그가 저주하는 대상이 바로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고린도전서의 성찬식을 보면, 그가 세운 교회에서 비밀스럽게 진행하던 성례였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예수를 본적도 없다. 그럼에도 그가 공생애를 함께 했다는 제자들을 무시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울이 예수를 영적으로 만났다고 하는 신앙 간증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예수를 신으로 승격시키는 데 한몫한다. 우리 정서로 "접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툭하면 하늘에 올라갔다느니 봤다느니 하니 말이다. 그렇다 바울은 신비주의와 종말론을 앞세워 그의 주장을 강화해 나갔다. 예수의 제자들이 죽거나 잊혀져 갈 즈음, 바울이 지중해에 전파한 기독교신앙은 대세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 예수의 제자들 무리는 그럼에도 건재했으나, 그들은 글을 몰랐고 이방 기독교인들처럼 포교하지도 않았다. 유대교에 한정된 폐쇠성 덕분인지 점점 소멸되어가는 예수의 직계제자들과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바울의 신앙은 예수가 다시오실 것이라는 임박한 종말을 선포하며 로마 전역에 퍼져나갔다. 따라서 기독교는 바울이 만든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바울이 제창한 기독교가 만연해 갈 즈음, 1세대 기독교인들이 죽어가자, 예수의 어록을 수집하여 복음서 집필이 착수되었다. 이 저자들은 대부분 바울의 제자들이며, 그의 사상을 승계하였지만 역사적 예수에 대한 흔적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도 있었고, 당시 로마와의 정서적 대립도 감안하여 거슬리지 않게 쓰도록 해야 했다.
이런 복잡한 배경하에 만들어진 복음서들은 유독 당시의 유대땅에 흐르는 로마에 대한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길이 없고, 도리어 엄한 바리새인만을 공격하거나, 예수와 가족을 떨어뜨려 놓는, 그리고 매우 평화롭고 판타스틱한 유대공간을 그려낸다. 복음서의 유대땅은 허구에 가깝다. 마치 <독립선언문>에 일본에 대한 얘기만 쏙 빼 놓은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예수 당시, 유대땅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과 닮아있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붙이고, 저들의 생사여탈권을 쥐락펴락 하듯하니, 팔레스타인들은 테러행위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현실을 상기해 보자. 예수가 살던 당시도 그랬다. 서민들의 피폐한 삶을 대변해 주던 이들은 바리새인들이었고, 언제나 로마에 대항할 준비가 된 이들이었다. 예수도 어쩌면 이런 바리새인과 같은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수가 바리새인과 많은 논쟁을 한 것도 그 한 예이니 말이다. 그리고 로마의 입장에서는 가시 같은 존재들이었으니, 복음서는 이들 바리새인에 대한 비판으로 로마와의 공감된 시선을 갖게 하며, 이방에 전파되는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게 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 하나는, 빌라도 앞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했다는 장면은 기정사실화 되어,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 범죄를 조장시켰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한 독일 조차도 이러한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원죄에 입각하여 대학살하지 않았던가.
예수 죽음과 부활, 다시오심, 이 모든 것들은 바울의 신념이 신앙화 되고, 그것이 각 교회에 퍼지고, 성문화 되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복음서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맞아 떨어지게 된 결과였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 카톨릭을 국교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거대 권력화가 되었고, 국가의 정치와 협력하여 대중을 이끌어가는 종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던 진정한 무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들은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만 그의 사상을 존중하고 삶으로 적용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한 유대 종파였던 고로, (이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4세기 이후로는 (기독교로부터) 이단으로 낙인 찍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들 무리의 이름이 에비오나이트다.
내가 신학교 다닐 때, 새롭게 알게된 개혁적이고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고, 약자의 편에 섰던 예수는 바로 에비오나이트의 예수였다. 학교가 보수적이서 그런 것인지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이는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이런 류의 서적에 끌리고 마음 한 구석에 정의감으로 불타올랐던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모든 구슬이 한꺼번 꾀일정도로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며 정리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쨌든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바울과 같은 이들에 의해 신념화 되고, 공동체와 국가를 이루는 근간을 제공해 오면서 절대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근대에 이르고 여러 성서연구가 거듭되고 가설이 그 실제성을 검증받아 오면서 오늘날 내가 아는 예수로 인식되게 된 것은 꽤 늦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다행스런 부분이라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기독교 세계관에 가둬지고 제한되어 지내오면서 억울한 시간도 많다. 그렇지만 지나온 시간을 탓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여 덮어놓고 믿는 믿음이 아니길 스스로 천착하며 달려오느라, 남들은 이런 쪽(기독교)으로 고개도 돌릴 틈 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재테크하고, 공부도하고 하면서 풍성한 시간을 보냈을 시간에, 나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저작물을 뒤지고 최근 신학 동향까지 들추면서 내가 아는 것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결론은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바울의 허구에 바탕을 둔 종교여서 나는 더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정리해 보면, 직장 내에서 신앙을 가졌던 내가 정상이었을까 (안믿는) 저들이 정상이었을까? 보는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에 이르고보니 예전의 내가 정상은 아니었던 듯 싶다. 나는 이것을 빠져나오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을 허비했던가. 그간의 신앙 고민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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