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시걸이라는 작가가 있었다. 2010년에 이미 고인이 되셨다. 에릭 시걸이 저술한 학술서적으로는 로마의 희극을 연구한 《로마의 웃음》이 제법 유명했다. 원래 본업은 하버드대 라틴어 교수, 즉 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이였다고 한다. 그 수업이 어찌나 지루할는 지는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 법하다. 그런데 이분이 소설을 쓰는 부케가 있으셨단다.
첫 소설이 1970년에 출간된 《러브스토리》인데, 《러브스토리》는 연애소설 속 백혈병 신드롬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러브스토리》는 오직 죽음만이 연인들을 갈라놓을 수 있다는 연애물의 오랜 낭만적 사랑의 계보를 잇고 있기도 하다. 소위 사망병 소설이다. 죽음은 사랑의 아우라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흔한 문학적 장치이니 말이다. 이 소설은 또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라는 대사로도 유명하다. 그의 소설들은 한편으로 "대중소설이라는 게 이 정도의 기품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준단다.
이분이 돌아가셨을 때, 한국 신문들만이 아니라 외국 신문들까지도, 그에 대한 부고에 너무 인색했다고 한다. 사실 어떤 인물에 대한 어떤 매체의 부고 기사를 보면, 그 매체의 취향만이 아니라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고종석은 에릭 시걸의 죽음이 조금 더 소란스러웠어야 했다고 소회한다.
나도 한때, 매체의 부고가 좀더 소란스러웠어야 한다고 생각한 분이 한 분 있었다. 언론인 리영희 교수다. 오랜 수감생활과 강직한 글쓰기로 몸소 "펜은 칼보다 강하다"를 시전하신 분이시고, 한국 현대사에 영향력 있는 분이셨는데, 그분의 부고는 세상 조용히 지나갔다는 게 한 때 나의 불만이었더랬지 싶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