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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by 체리그루브 2018.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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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 가

카로린 엠케 지음 | 정지인 옮김

다산초당, 2017


혐오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사회를 살아가기에 이 책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읽으면서 마음 속 분노를 조금은 가라 앉힐 수있게 되기를 바란것일 수도 있다. 한때 정치 혐오로 뉴스를 기피하던 때가 있었다. 촛불이 일고,  부패한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며 소극적 응원을 보낼 뿐이었지만, 여전히 사법부의 역행하는 현재의 판결들을 보면서는 분노를 감출수 없는 나를 본다. 분노와 증오는 훈련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정당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나의 혐오감정을 분석하고 경계하면서 또다른 혐오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이른바 한국당, 애국당, 박사모, 어버이연합 이라 불리우는 단체들의 현 정권에 대한 혐오적 행태다. 이와 함께 연합뉴스와 조중동의 편파보도와 반정부적 행태를 보며, 무언가 선동하고자 꿈틀대는, 물론 그것이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벌어지는 정치선동인 것은 알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점은 지울수 없다. 그들이 이루어 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안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심 이간질. 북한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게 북한을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아주 저급한 행동을 일삼는 무리들이다. 


 다음은 이 책에서 찾은 인상 깊었던 문구들과 이에 따른 작은 의견들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혐오와 증오는 개인적인 것도 우발적인 것도 아니다. 단순히 실수로 또는 궁지에 몰려서 자기도 모르게 분출하는 막연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도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다. 이것이 분출되려면 미리 정해진 양식이 필요하다. 모욕적인 언어표현, 사고와 분류에 사용되는 연상과 이미지들, 범주를 나누고 평가하는 인식틀이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력되고 양성된다. 그것을 자발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감정들이 계속 양성되는 일에 기여하는 셈이다.(23)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앞서 위엣글을 쓸 때와 시점이 2주 가까이 차이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투운동이 급격히 번지면서 문화계 인사들을 향한 이어지는 폭로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유명 배우들도 하루 아침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 기류는 무엇인지 싶다. 가해 당사자들에게는 날벼락이라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오랜 고통이었다. 이것은 팩트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혐오는 많은 부분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라는 것. 여성 피해자의 억울함은 있는 그대로 온 국민이 힘써 받아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때부터 새로운 혐오가 생산된다.


그들은 '걱정하는 시민들'이 인종주의자나 극우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말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인종주의자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종주의조차도 인종주의자이기를 원하지 않는다(이제는 어쩌면 인종주의자라는 말이 지시하는 내용 자체는 그렇게 기피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인종주의자라는 명칭 자체는 아직도 사회에서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걱정은 본심을 은폐하는 감정으로 유효하다. 걱정은 때때로 그 안에 깃든 외국인혐오를 외피처럼 감싸 그에 대한 비판을 막아낸다. 이렇게 금기는 실현되는 동시에 전복되고, 외국인혐오에 대한 사회적 거부는 확인되는 동시에 의문시 된다. 속에는 혐오와 원한과 경멸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걱정이라는 모습을 띰으로써 용인할 수 있는 한계점의 위치를 옮겨놓는 것이다.(52)

 

저자는 지금 독일에서 가장 주된 사회적 이슈로 난민을 받아들인 결과로 인한 광기어린 보수매체와 시민단체의 우려섞인 혐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다문화 분위기와도 일치하는 맥락은 있어 어렵지 않게 이해는 되지만, 없는 혐오를 만들고 배가시킨다는 점에 있어서는 확실히 북한을 이용하는 보수 세력들의 프로파간다와 같다고 우리 현실에 맞춰 생각해본다.

광신적이고 편협한 독단론자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제로 정당한 정신적 불만을 일으키는 문제들 자체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걱정에 도사린 위험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척하면서 오히려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다.(Werner)" (56)


 

나는 이런 것이 바로 현재 야당이 현 정부에 대해 꾸미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본다.

증오와 공포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자들도 증오와 공포에 불을 붙이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이 공포의 부당이득자들이 시청률이라는 화폐를 기준으로 생각하는지 득표수라는 화폐를 기준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공포를 부추기는 제목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지 흥미로운 헤드라인으로 주의를 끄는지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거리의 '폭도'라 불리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 하면서도 그들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아주 잘 알고 있다.(90)


 

이점은 여야를 막론하고 우아한 정치인들이 시민들을 악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 주의깊게 읽히는 대목이다. 한 표든, 돈이든, 이목이든 우리는 항상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반대효과를 누리는 이가 과잉으로 점유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하겠다.

 

저자는 이외에도 여성문제, 동성애 문제도 다룬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동성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해 벌금 3000 만원 이하까지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이 다뤄지고 있다고 한다. 동성애에 대한 법적 토대가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차별의 그늘이 조금씩 겉혀가는 기회라고는 보는데, 이러다가 동성애를 금지하는 성경마저 금서가 되는 것을 우려해야 하는 것은 아닐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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