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말할 기회, 경력
이다혜 작가님의 <퇴근길의 마음>을 읽다가 다음 글귀에 걸터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시네 21> 기자 답게 영화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 들려주는 작가님이다.
영화 〈허트로커〉는 이라크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팀의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폭발 사고로 분대장이 사망한 팀에 새로운 분대장 제임스가 온다. 그는 꽤 독선적인 인물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굴 때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상관에게서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몇 개인가? 해체한 폭탄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겠다던 제임스는 873개라고 대답한다. 감탄한 상관은 “어떻게 해야 폭발물을 그렇게 해체할 수 있는 건가?”라고 묻는다. 제임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안 죽으면 됩니다, 대령님.”
경력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살아남은 사람만이 말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안 죽으면 된다. 이것은 영웅적인 동기와는 상관이 없다.
그렇다. 안 죽으면 된다. <알쓸인잡> 2화에서 김영하 작가는 발자크를 소개했다. 전기작가 츠바이크는 발자크를 그 어디에 세워놔도 잘 어울릴 것만 같은 인물이라고 하였다 한다. 요리사면 요리사, 농부면 농부.. 그러나 정작 그에게 가장 어울려 보이지 않았던 게 바로 '작가'라는 그의 직업이었다고 한다. 작가 같지 않은 작가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낭만주의를 외치는 풍조 속에서 사실주의에 입각해 서민들의 곤궁함과 돈을 노골적으로 집착, 욕망하는 그의 글은 기존 문학계에서는 천박스러워 보였을 테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듯 싶다. 그래서 더더욱 작가같지 않은 작가라는 불명예적 수사가 붙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의 책에 열광했고, 그의 사후에야 사실주의가 대세가 되었더란 걸 보면, 그가 한 발 앞서 간 곳이 곧 길이 된 것이라 할 만하다. 이것은 다 그가 작가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발자크의 이야기는 선구자적 삶에 대한 이야기라 평범한 사람의 '경력'이라 할 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해도 <허트로커>의 제임스가 말하는 '경력'이라는 것은 살아남은 자가 말할 수 있는 기회 정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강한 동기가 될 수 있다 하겠다. 한 번만 삐긋하면 죽을 운명의 수많은 곱절을 이겨내고 살아온 EOD 전문가에서는 "한 번 하면 실수고, 두 번 하면 실력이다"라는 말은 사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있는 세계에서는 목숨까지 오가는 것은 아니기에, 두번이고 세번이고 기회는 있을 터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그 실수의 무게나 책임의 범위가 크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EOD 전문가의 '경력'의 아우라에서 '살아남는자의 말할 기회'를 엿봤다. 그저 나는 이렇게 소소한 블로그를 통해 그런 말할 기회를 스스로 찾고 있으니 스스로 위안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