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없는 삶을 생각하다
나는 개발자다. 이미 이 업계에서 일한지 오래되었고 많은 개발자들과 협력해 일 해왔다. 이런 집업적 특성을 제외하면 다달이 월급으로 연명하는 수단화된 모든 가장들과 다를 바 없다.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며 하늘의 것을 추구하고, 죽음 이후에는 천국을 희망하며 일요일 마다 출석부를 찍으러 교회에 간다.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나는 '나'라는 서비스를 팔아 제화를 얻고, 동료 개발자들을 다독여 개발 기한을 준수하도록 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식민지 알제리의 삶의 방식과 본국 프랑스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진 나는 청교도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아비투스에 휘감겨 내가 서 있는 세상이 도저히 내가 뚫고 나가갈 수 없는 견고한 생활인 줄만 알았다. 다른 삶(종교없는 삶)이 과연 가능하기나 하겠냐는 오만의 시선으로 저들을 안타까워 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저들과 나만의 건너지 못할 심연 깊은 강이 있었던 게지.
미쉘투르니에의 소설에 비친 로빈슨크루소 이야기는 또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바로 다른 삶. 놀이의 아비투스를 소유한 바르방디(?)라는 원주민 아이를 통해서 로빈슨은 변해 간다. 거들먹 거리고 구별짓고, 신앙하던 그에게 다가온 이 아이로 좀더 자유로울 수 있었고 비로소 내세의 그 무엇이 아닌 현재에 충실하고 목적이 되는 삶. 내세의 목적을 향해 오늘을 수단화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 말이다. 오늘을 쥐어짜서 내세에 저장하는 삶이 아닌 오늘을 충만하게 살아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놀이 같은 삶. 회사의 그 무엇은 그저 나를 부품화 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내가 얽히어 더이상 불행해지지 않으리란 희망을 안고 출근한다. 포교의 부담으로, 행동거지 하나 말 하나 조심 조심,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아 거룩한 부담감으로 이들 원주민과 같은 사람들의 간악한 마음을 돌아서게 하려는 전략 따위는 이젠 다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저들은 니체가 생각 했던 그 '초인' 개념이 이미 내재화 되어있고 나는 그보다 한참 미개하게도 분발하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다. 하룻밤 원나잇을 이야기 하는 저들의 어휘를 경멸해 왔으나 어쩌면 이는 나의 경건함을 저들과 구분짓는 하나의 경계선 역할만 더해 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들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해 봤늘까. 저들은 그 어떤 금욕의 선 없이 스스로를 목적화 하여 살아가는 아비투스를 소유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지. 순간 패배감이 밀려 오지만, 내가 누구인가. 관련없는 분야에서 20년째 일 해 오고 있는 제법 전문가다워진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아닌가.
2019년 1월 29일에 작성한 글인데, 이때도 참 고민이 많았던 듯 싶다.